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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6월22일
제목: 9.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 교회(6)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계22:3-5 -
성경 본문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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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교회의 위치
4.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 교회
바. 섬기는 자들 가운데 있는 보좌 계22:3~5
보좌는 섬기는 자들과 함께 있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의 보좌는 어디에 있는가? 즉 어디서 통치를 하시는가? 섬기는 자들 가운데, 즉 그들과 함께 있다. 왕은 백성들과 함께 있으며 그의 통치는 섬기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좌는 섬기는 자들 가운데 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이름이 일컬어졌고 그들 중에서 일하셨다. 법궤는 이스라엘 안에 있었고 함께 움직였다. 따로 움직이신 일이 없다. 여호와는 섬기는 자들을 통해 나타나신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단지 거리 문제였다. 섬기는 자의 차이 때문이다. 여호와는 모세 앞을 지나가셨으나(출33:20참) 예수와는 함께 하셨다(요1:14참).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멀리 떠나 계시지 않고 가까이 계신다.
다시는 저주가 없음
저주란 따로 떨어진 것이며 버려진 것이다. 생명 안에서는 떨어지면 저주고 연합하면 축복이다. 땅이 씨와 연합하지 못하면 황무지가 되고 연합하면 농장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어진 인생이 형상으로서 그와 함께 하지 못하면 저주인 것이다. 아담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멀리 갔으므로 저주였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다시 돌아왔다. 형상의 위치, 즉 섬기는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다시는 저주가 없게 되었다. 아담은 무엇이 될 줄 알고 스스로 떠났으므로 저주였으나 우리는 구속 안에서 떠날 수가 없으므로 다시는 저주가 없다. 그러므로 아담으로 인하여 전가 되었던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히 소멸된 것이다.
섬기는 자들은 그의 얼굴을 본다
구속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 왔을 뿐 아니라 새 생명 안에서 그를 섬기는 위치로 돌아왔다. 섬기는 위치는 그의 형상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함께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가 나타시도록 그의 형상으로써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의 형상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섬김만큼 나타난다. 모세는 자기가 섬긴 만큼 그를 여호와(I AM..)로 나타냈고, 예수는 자신이 섬긴 만큼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셨다. 또한 섬기는 자들은 자신의 섬김에 의해 나타나신 그를 보는 것이다.
동산을 떠난 아담의 불행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위임을 떠났으므로 하나님을 뵐 수 없게 된 것이다. 동산에 있을 때는 날이 서늘하면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창3:8참). 그러나 동산 안에 있지 않으므로 빛 되신 하나님을 뵐 수 없고, 뵙지 못함으로 어둠인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1요1;5). 지으신 분은 지음 받은 자에게 빛이다. 왜 만드셨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빛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알려면 지으신 이를 만나야 한다. 지으신 분을 만나지 못하면 인생은 어둠이다. 아담은 이 어둠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창3:10참).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누구나 그의 심연 속에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빛이신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 모세도 직접은 보지 못했던 그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출33:20.고후3:18참).
사람들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있으면 보여 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 보이시기 때문에 섬기는 자들만 볼 수 있다. 섬기는 자들은 그와 함께 동산에서 그를 뵙고 함께 거니는 것이다.
주의 이름이 섬기는 자들의 이마에 있음
이름은 권세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권세를 표시한다. 섬기는 자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왕의 이름으로 온 사람은 왕의 권세와 함께 온 것이다.
권세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아담은 보내신 이를 버렸기 때문에 권세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스스로 만들려고 하다가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라멕은 청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창4장참).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하다.
인생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섬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섬기지 않고 권세가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만든 것으로서 반역의 권세일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표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는 것이다.
다시는 밤이 없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밤이 없다. 어둠이 없는 것이다(시27:1,119:105,13,50:2). 엄마가 있는 애기에게는 사랑의 빛이 있고, 스승이 있는 학생에게는 지식의 빛이 있으며, 목자가 있는 양에게는 푸른 초장의 빛이 있고, 하나님 있는 인생에게는 존재를 비춰주는 빛이 있다. 인생의 밤은 하나님 없음이다.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시119:105)했고,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자로 깨닫게 합니다.”(시19:130)하였으며,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시27:1)하였는데 이 빛이 시온에서 비취었다(시50:2)고 하였다. 시온은 옛날의 하나님의 성이며, 내일의 새 예루살렘이고, 오늘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빛은 오늘 교회 안에서 비친다. 교회는 밤이 없다.
세세토록 왕 노릇함
빛은 어둠을 다스린다. 땅이 물에 잠겨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오심으로 빛이 왔고 빛이 비침으로 어둠은 물러가고 땅은 다시 회복 되었다. 또한 예수께서 인격의 빛을 발하심으로 어둠의 권세 잡은 자 마귀는 물러나고 천사들이 시중들었던 것이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난다.
적이 어둠에 있고 나는 빛 가운데 있다면 백전백승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으므로 밤이요 어둠이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줄 자가 없으니 어둠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는 자는 다 왕이 되어 승리하고 지배하고 다스린다. “하나님은 빛이시다”(1요1:5)
하나님의 보좌는 섬기는 자들 가운데 있으며 섬기는 자들은 그의 얼굴을 봄으로 다시는 저주가 없고, 섬기는 자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권세)이 있으므로 다시는 밤이 없고, 주 하나님이 비취시기 때문에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된다. 왕은 승리자요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다. 하나님은 어둠을 승리한 자들로서 자신을 대신하게 한다.